아르헨티나의 불우한 역사는 식민 침탈의 결과


아르헨티나 역사 : 스페인 식민 시절 정책에 의한 후유증의 연속

아르헨티나의 역사는 1500 ~ 1800년대 스페인 식민 통치 시절의 과도한 보호무역 중심 정책의 부작용을 현재에도 겪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르헨티나의 역사는 1500년대 스페인의 식민 시대 부터 시작되었습니다.


300년의 통치 끝에 아르헨티나는 독립을 했고, 이후 농목축업의 발달로 세계 6대 부국이 되기도 합니다.

1929년 대공황후 포퓰리즘 중심의 페론당이 정권을 잡게 됩니다.

1970년대 석유파동후 군사정권이 독재를 하게 되었지만, 외채 발행 및 통화가치 붕괴로 빈곤율이 높아지게 됩니다.

1990년대 민주 정권이 들어섰지만, 페론정부의 복지 문화와 군사정권의 외채 및 통화가치 붕괴를 물려받은 후손들은 지난 수십년간 국가 파산 위기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결국 침략과 약탈, 쇄국적 정책으로 탄생한 국가는 최초의 모태를 수백년이 지나도 그대로 답습하고 있습니다.

 

스페인 식민 시대의 쇄국적 정책(AD 1516 ~ AD 1810)

스페인 식민 시절 아르헨티나 지역은 무역 금지, 매관매직, 강제 개종 및 원주민 탄압, 소수 지주 토지 독점 등의 폐쇄적인 보호무역주의를 300년간 실시했습니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아르헨티나 및 남아메리카 지역은 스페인의 식민 지배를 받게 됩니다.

스페인의 식민 지배 정책은 약탈 중심이었고, 다른 서양의 열강 등과 교역을 금지하는 보호무역주의를 펼쳐서 아르헨티나 및 남미 지역의 경강력한 중앙집권정책은 자연스럽게 매관 매직을 유도했고, 현대 아르헨티나가 현재에도 법률적 제도가 우수하지 못한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스페인의 이민자 및 그 후손들은 남미의 원주민을 학살했고, 질병으로 많은 수를 죽였으며, 통치를 쉽게 하기 위해서 카톨릭으로 강제 개종을 시도했습니다.

아르헨티나의 광업 및 농업은 소수의 지주가 토지를 독점했고, 노동력을 착취했고, 1800년대 독립 이후 같은 식민 국가였던 북아메리카 독립국과 남아메키라 독립국의 경제력 차이가 극심하게 된 이유가 됩니다.

정리하면, 아르헨티나의 식민 지배 시절 국민도 결국 스페인계 정복자의 후손이었고, 따라서 독립 이후에도 같은 정복 정책을 펼치게 됩니다.

 

독립 이후 드림 이민 시대(AD 1810 ~ 1929)

독립 및 내전 후 아르헨티나는 남미 원주민 착취 및 냉동과 해운 기술의 발달로 막대한 농, 목축업 수입을 얻게 됩니다.

유럽의 내전으로 아르헨티나 및 남아메리카의 국가들은 하나둘씩 독립을 하게 됩니다.


내전 이후 아르헨티나는 선조들의 방법 그대로 원주민을 학살하고, 팜파스 평야의 농토를 빼았습니다.

Argentina-Map

아르헨티나 사막의 정복#이라고 불리는 이 끔찍한 비극에서 해당 지역의 원주민이었던 마푸체 부족은 1300명 이상이 사망하고, 영토의 90% 이상을 빼았고, 부족 인원 대다수가 학살, 전염병으로 사망 및 추방되었습니다. 현재 이 팜파스 평야는 남미 최대의 곡창 및 목축업 장소 중의 하나입니다.

아르헨티나 영토 확장

고기의 냉장 기술 및 해운 산업의 발달은 아르헨티나의 농목축업의 상품 수출에 날개를 달아줬습니다.

그 결과 아르헨티나는 1870년대 당시 세계 6대 부국으로 불릴 정도로 돈이 많아서 인구의 1/3이 이민자일 정도로 이민 러시가 성행했습니다.

식민 지배 시절에도 원주민 착취로 돈을 벌던 아르헨티나의 이민자 후손들은 독립 후에도 원주민을 다시 착취하며 농목축업으로 막대한 부를 거두었습니다.

 

대공황과 페론주의 시대(AD 1929 ~ 1955)

독립 당시부터 소득 배분이 불균형했던 아르헨티나는 미국발 대공황 후 페론과 같은 포퓰리즘 정권이 대세가 됩니다.

세계 6대 부국이던 아르헨티나는 왜 포퓰리즘 정권이 들어섰을까요?

사실 아르헨티나는 소수 지주가 토지와 자본을 독점한 구조였고, 대다수의 국민은 임시 노동자로 빈곤율이 독립 이후에도 계속 높은 상태였습니다.

즉, 애초에 원주민 착취로 건설된 아르헨티나의 농목축업 사업은 따라서 자국의 국민들 사이에서도 서로 착취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1차 세계 대전에 중립을 유지하면서 식량 조달로 부를 얻었지만, 이 후 각국의 보호 무역주의 및 미국발 대공황으로 농목축업 수출에 의존하던 아르헨티나 경제는 휘청거리게 됩니다.

대공황 후 육군 대령 출신인 페론은 대통령이 자본주의도 공산주의도 아닌 제 3의 길인 포퓰리즘의 길을 걷게 됩니다.

아르헨티나 페론 대통령


페론 정부 당시 무상 대학 교육 및 공공요금 등의 인하는 당시 전체 국가 소득의 1/3이 국민에게 배분될 만큼 아르헨티나의 빈곤율을 크게 낮추는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포퓰리즘 정책은 농목축업 사업으로 과거에 벌어들인 부를 재분배한 것에 불과했습니다. 또한 급격한 보호무역주의로 해외와의 교역을 단절시켰고, 수많은 해외 자본 투자된 기업을 강제 국영화 시켰습니다.

복지 비용도 과도했는데 예를 들어 소득의 8%만 지불하면, 47세이후 소득의 82%를 연금으로 지급하는 미국도 못할 황당한 정책으로 일종의 표팔이를 과도하게 했습니다.

산업의 전환없이 약 20년간 기존의 부를 재분배하는데만 집중하던 페론 정부는 결국 기존 기득권 세력의 지지를 잃고 쿠테타로 축출되게 됩니다.

 

군사 정권과 하이퍼 인플레이션(AD 1955 ~ 1983)

군부 정권은 인권 탄압을 하면서, 외채 발행을 통한 산업 전환에 실패를 하고,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게 됩니다.

아르헨티나는 쿠테타로 시국이 어려울 때 석유 파동 등으로 경제가 휘청거리자 망명을 갔던 페론이 다시 복귀했지만 곧 사망하게 됩니다.

그 부인이 대통령이 되었지만, 1976년 정책 실패로 페론이 임명했던 육군 총사령관인 비델라#가 군부 정권 쿠테타로 장기 독재를 시작하게 됩니다.


아르헨티나 비델라 대통령

이 후 이 정권은 페론주의를 지칭하는 정치인과 시민들을 10만명 살해하고, 40만명을 고문하면서 아르헨티나의 더러운 전쟁#이라고 불릴 정도로 악독한 학살을 펼치게 됩니다.

군부정권은 통화발행으로 하이퍼인플레이션을 유발했고, 임금 동결 등으로 빈곤율이 상승하면서 이를 만회하기 위해서 국내회사를 해외에 헐값에 매각해서 실업률을 올렸고, 과도한 국채, 외채 발행으로 채무가 급격하게 증가하게 됩니다.

빈곤율의 폭증으로 비델라는 실각했지만, 그 밑의 군부 인사들이 차례로 대통령을 하다가 국내 경제 위기를 해외로 돌리기 위해 영국과 포클랜드 전쟁을 펼쳤고, 패전 끝에 군부 정부는 축출되게 됩니다.

아르헨티나의 군부 정권은 인권 탄압 및 높은 빈곤율 그리고 하이퍼 인플레이션에 대한 책임으로 결국 정권에서 물러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민주 정권 및 통화개혁 실패(AD 1983 ~ 현대)

현대 아르헨티나 정권은 민주 정부가 들어섰지만, 페론 정권의 과도한 복지 문화와 군사정권의 외채를 물려받았고, 근대의 정부들은 통화 개혁에 실패하여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포클랜드 전쟁 패배 후 해외 자본 유출로 아르헨티나는 경제 위기에 빠지며 1986년 알폰신이 민주 정권의 첫 대통령이 됩니다.


이후 대통령들이 화폐개혁, 신자유주의 등 전략을 사용했지만, 빈곤율, 실업률, 정부부채 등은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2001년 외환위기 및 디폴트, 2014년 디폴트 등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아르헨티나의 지불유예 및 채무불이행 사태가 연속됩니다.

현대의 민주 정권도 잘못된 통화 정책을 펼친 점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1990년대에는 페론당의 카를로스 메넴 대통령은 아르헨티나의 페소와 달러를 고정환율제로 고정시켰지만, 동시에 자국통화를 계속 찍어대는 모순된 전략을 사용하며 하이퍼인플레이션을 더 증가시켰습니다.#


중공업 제조업 수출의 경우 원재료를 수입해야 하는데 페소화 가치가 폭락하니 원재료 가격 상승 및 아르헨티나는 페론주의에 의해 노동법이 너무 강해 매출이 줄어도 고용 유동성을 발휘하기 힘듭니다.

결국 민주 정권도 과거 정권의 복지 정책 및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극복하지 못했고, 통화가치 하락에 따른 세수 감소, 공공요금 인상시 정권 전복의 반복으로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아르헨티나 역사는 식민 침탈의 대가를 치르는 중

아르헨티나의 역사는 남미 원주민에 대한 탄압의 대가를 수백년 후 이주민의 후손들이 치르는 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르헨티나는 스페인 식민 정부 시절에서부터 원주민을 탄압하는 정복 정책 및 쇄국적인 보호무역 주의를 펼쳐왔습니다.

스페인으로부터 독립 이후에도 이민자의 후손들은 원주민 영토를 빼았으며 그 기반으로 막대한 부를 얻게 됩니다.

약탈과 농목축 중심 수출 그리고 소수 지주 자본 독점 구조는 빈곤율을 증가시켰고, 결국 포퓰리즘 정권을 들어서게 했습니다.

군사 정권과 포퓰리즘 정권이 서로 교체되면서 복잡한 정세를 지녔지만, 산업 구조 전환의 실패, 빈곤율, 하이퍼 인플레이션, 막대한 해외 부채 등은 해결되지 않고, 후대에게 누적되었습니다.

현대의 민주 정권은 통화개혁에 실패했고, 민족주의 및 쇄국적 보호무역주의를 외치는 포퓰리즘 정권이 들어서고, 통화가치 폭락하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아르헨티나 역사의 힘겨움은 어디서 왔을까요? 군사정권도 페론주의자의 잘못도 아닌 바로 수백년전 남미 원주민을 학살하며 경제를 키워온 바로 그 침략자들이 자신들에 있습니다. 그들이 바로 자기의 후손에게 대가를 대신 치르게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