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클랜드 전쟁은 아르헨티나의 정치적 침략 전쟁

포클랜드 전쟁은 아르헨티나의 경제난 회피용 침략 전쟁

포클랜드 전쟁은 아르헨티나가 군부 정권의 경제난을 해외로 돌리기 위해 영국의 섬을 침공했다가 패배한 전쟁입니다.

아르헨티나는 전쟁의 패배로 하이퍼 인플레이션이 더 악화되면서 군부 정권이 전복되고, 민주 정권이 들어서게 됩니다.

영국은 전쟁의 승리로 국내 경제난 악화의 시선을 돌리면서 성장 중심의 정책을 지속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포클랜드 전쟁의 원인은 아르헨티나의 군부 정권이 경제난과 인권 탄압 문제의 국민 불만을 해외로 돌리기 위해 침략을 벌이면서 시작되었습니다.

포클랜드 및 아르헨티나의 원주민은 대부분 쫓겨났고, 현재 거주민은 유럽 이민자의 후손이므로 영유권 주장은 정당하지 않습니다.

포클랜드 전쟁은 군사력, 보급력, 외교력, 전쟁 정당성에서 밀린 아르헨티나의 패배로 끝나게 됩니다.

포클랜드 전쟁으로 영국은 경제 위기를 극복했고, 아르헨티나는 군부 정권이 무너지게 됩니다.

 

포클랜드 전쟁 아르헨티나 결과 : 군부 정권 붕괴

포클랜드 전쟁의 결과로 아르헨티나는 패배하여, 군부정권이 무너지고, 민주 정권이 들어서게 됩니다.

아르헨티나는 육해공군 649명이 전사하고, 1,657명이 부상을 당했으며 11,313명이 포로로 잡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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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는 폭격기, 수송선, 헬기 등의 비행기 100대가 격추되었고, 군함 7척, 잠수함 1척이 침몰했습니다.

당시 아르헨티나 대통령인 레오폴도 갈티에리는 전쟁을 승전했다고 거짓말을 치다가 결국 물러났고, 부하 장군들이 정권을 유지하다가 결국 시위로 전복당하면서 라울 알폰신이 민주 정권의 첫 대통령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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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당시 아르헨티나는 하이퍼 인플레이션인 상태였고, 패전후 해외 투자자의 이탈로 경제가 완전히 붕괴되었습니다.

그 결과 아르헨티나는 중남미에서 강력했던 경제 및 군사력에서 위치를 상실한채 현재에도 복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결국 포클랜드 전쟁은 군부 정권이 몰락까지도 경제난을 촉진하며 아르헨티나 국민에 더 큰 피해를 입힌 전쟁입니다.

 

포클랜드 전쟁 영국 결과 : 경제난 극복

포클랜드 전쟁의 승전으로 영국은 경제난을 극복하고 현재의 상위 소득 국가의 기반을 마련하게 됩니다.

영국군은 255명 사망, 775명 부상, 115명이 포로로 잡히게 됩니다.

영국 항공모함 포클랜드로 출격
영화 스타워즈 : 제국의 반격을 패러디한 영국 항공모함 출격 사진 – 뉴스위크 1982년

수송선 및 구축함을 포함한 군함 7척이 침몰했으며, 헬기 및 폭격기를 포함한 비행기 35대가 격추당했습니다.

1976년 IMF로부터 구제 금융을 받을 정도로 영국은 실업률(10%), 하이퍼 인플레이션(20%)로 힘겨운 상황에서 보수당의 마가랫 대처 총리는 실각의 위기에서 전쟁 승리로 재집권하게 됩니다.#

영국 포클랜드 전쟁 전후 실업률 변화
영국 실업률 차트 1971 ~ 2019 – 영국 통계청

분배 중심의 노동당은 이후 긴 세월을 야권에서 보내게 되고, 성장 중심의 보수당은 장기 집권을 하면서 현재 영국의 10위권 내외의 높은 경제력에 보탬이 됩니다.

물론 영국 경제의 성장이 포클랜드 전쟁의 승리라고 보기에는 전쟁 비용 대비 수지가 맞지 않는 측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승전으로 성장 중심의 정책을 장기간 유지할 수 있었던 여력을 얻은 것이 가장 큰 이점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포클랜드 전쟁의 결과로 영국은 내수 경제 위기를 극복을 위해 성장 중심의 정책을 펼친 보수당의 장기 집권에 성공하게 됩니다.

 

포클랜드 전쟁의 원인 : 아르헨티나 군부 정권의 정치적 의도

포클랜드 전쟁은 인권 탄압과 하이퍼 인플레이션 문제를 해외로 돌리기 위한 아르헨티나 군부 정권의 침략 전쟁이었습니다.

농업으로 벌어들인 수익을 복지 기금으로 뿌리던 페론당이 장기 집권끝에 전복당하고 군부 정권이 들어서게 됩니다.

그러나 군부 정권은 외채를 빌렸지만 경제를 살리지 못했고, 오히려 구 페론당 인사들을 학살하며 정치 탄압을 크게 시작합니다.

국민 탄압으로도 경제를 살지지 못했던 군부 정권은 빈곤률이 급격하게 상승하여 여론이 불리하게 적용되기 시작합니다.

아르헨티나 군부정권 빈곤율 차트
포클랜드 전쟁 전후 아르헨티나 빈곤율 차트 – 아르헨티나 통계청

하이퍼 인플레이션에 국채 파산을 자주 하던 아르헨티나 군부 정권은 결국 포클랜드 제도를 침략하면서 해외로 시선을 돌리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하지만 포클랜드 전쟁의 패배로 외국 자본이 급격히 빠져나가면서 경제난이 악화되어 군부 정권은 전복되고, 결국 민주 정권이 들어서는 핵심적인 사건이 됩니다.

그런데 아르헨티나는 어떤 근거로 과거 세계 최강대국인 영국을 상대로 침공 전쟁을 펼칠 생각을 했을까요?

당시 영국은 외환위기로 IMF로 부터 구제 금융을 받고, 실업률이 높았습니다.

따라서 아르헨티나는 영국이 지구 반바퀴 거리에 있는 소규모 섬 탈환을 위해 대규모 전쟁을 벌일 것이라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아르헨티나는 무력 점거를 하면, 영국이 협상을 시도할 것이라 생각을 했고, 실제로도 포클랜드의 주둔 영국 군인은 모두 생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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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영국은 상선과 여객선을 전투 지원선으로 징발할 정도로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영국도 당시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았던 점을 해외의 전쟁으로 돌리기 좋은 상황이었습니다.

수지가 맞지 않는 전쟁 비용이었지만, 당시 마가렛 대처 총리는 증가하는 실업률과 낮아지는 보수당 지지율을 반전시키기 위해 전쟁을 선택하게 됩니다.

포클랜드 전쟁은 좀 더 종합적으로 보면, 양국의 지도자들 모두 자국의 경제 위기를 해외 전쟁을 통해서 극복해보려는 외나무 다리 위의 싸움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둘 다 경제력 강화를 위해 배수의 진을 쳤고, 영국은 승리로 목적을 달성했으며, 아르헨티나는 정권 붕괴를 당하게 됩니다.

또한 아르헨티나는 전쟁이 벌어지면 적어도 유럽이나 태평양 인근의 유럽계 국가 절반 정도는 자신들의 편을 들어줄 것이라 생각을 했습니다.

아르헨티나는 다른 남미 국가와 달리 원주민을 대부분 학살하거나 내쫓고, 이민 정책도 백인만 골라 받았을 정도로 인종차별이 심한 국가입니다.

따라서 인구 구성이 실제로 유럽계가 대다수인 아르헨티나는 은연중에 자신들을 같은 유럽계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실제 전쟁 발발 후 대부분의 유럽계 국가는 영국의 편을 들게 됩니다.

교전국 영국 vs 아르헨티나
지원국 미국 이스라엘
프랑스 페루
뉴질랜드 베네수엘라
칠레 과테말라
시에라리온 리비아
감비아 브라질
소련

지지를 받지 못한 이유는 인종의 동질성을 떠나서 아르헨티나는 타국의 영토를 아무런 맥락없이 침공해서 동맹국에게 호소할 명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당시 남미의 군부 정권의 상당수는 냉전시대의 사회주의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 암묵적으로 미국으로 부터 지원을 받는 점도 있었습니다.

아르헨티나로 반환되는 포로들
본국으로 송환되는 아르헨티나 포로들 – Ken Griffiths – 영문 위키

미국은 영국과 아르헨티나와 모두 동맹이었으므로 처음에는 포클랜드 주민의 투표 등으로 국적을 결정하자는 중재안을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가 중재안을 거부하자 결국 영국의 편을 들게 됩니다. 이 결과로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남미 국가에서 미국의 정치적 입지가 크게 줄어들게 되는 원인이 됩니다.

특히 바로 옆나라이자 마찬가지로 인종차별이 심하고 원주민을 학살하던 칠레도 영국의 편을 들면서 칠레는 전쟁 기간중 영국에게 영공을 개방하면서 아르헨티나 패전에 기여를 하게 됩니다.#

같은 유럽 침략자 출신들이 서로를 배반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서로가 싸운 이유도 원주민 지역의 영토를 빼았고 학살을 하면서 생긴 분쟁입니다.

결국 아르헨티나는 타국의 영토를 빼았은 대가를 치르면서 전쟁의 패배로 경제난이 심화됩니다.

 

포클랜드는 더 가까워도 아르헨티나 영토가 아닌 이유

아르헨티나의 원주민은 지금도 탄압을 받고 있으며, 대다수 아르헨티나 국민은 유럽 이민자의 후손으로 영유권 주장은 합당하지 않습니다.

지도를 보면 분명히 포클랜드는 아르헨티나에 더 가깝습니다. 따라서 포클랜드는 영국이 세계 침략 시절 식민지로 삼은 섬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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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면, 이 섬은 원래 주인이 없었습니다.

아르헨티나는 해당 지역 원주민을 학살하면서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같은 유럽 이민자의 후손 집합입니다.

독립후 아르헨티나의 영토를 보면, 조금씩 원주민을 몰아내면서 영토를 확장합니다.

아르헨티나 영토 확장

즉, 유럽계 침략자의 후손들이 남의 나라 땅의 섬에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언젠가 있었을 해당 제도의 원주민들은 모두 사라지고 없습니다.

결국 아르헨티나는 타국의 영토를 침범하면서 커온 경제 정책을 계속 고수하다가 포클랜드 전쟁 패전으로 경제난이 더 심화되게 됩니다.

 

포클랜드 전쟁의 과정 : 군사, 보급, 외교에서 모두 패배

아르헨티나는 전쟁의 정당성, 군사력, 보급력, 외교력 등에서 밀리며 전쟁에서 패배하게 되니다.

1982년 아르헨티나는 4000명의 군대로 100명의 영국 군대가 주둔하던 포클랜드를 침공해서 항복시킵니다.#

당시 경제난이 심각하던 영국은 마찬가지로 해외로 시선을 돌리기 위해서 상선, 호화 여객선까지 징발할 정도로 병력을 끌어모아 탈환 작전에 나서게 됩니다.

동시에 마가랫 대처 총리는 국제 사회 지지를 위해서 미국 및 유럽로부터 아르헨티나에 대한 수출 규제 협조를 받게 됩니다.

미국은 영국과 동맹이었고, 아르헨티나 군부 정권과도 동맹이었지만 결국 미국은 영국의 편을 들게 됩니다.

심지어 대처 총리는 칠레까지 찾아가서 협상을 통해서 영공권을 확보하게 되고 이는 결정적인 전쟁의 승리 요소중의 하나가 됩니다.

영국 해군은 원자력 잠수함으로 아르헨티나의 구축함을 침몰시켰습니다. 20분만에 300여명이 사망했고, 700명이 구조됩니다.

이 사건으로 아르헨티나 해군은 사실상 해상전을 포기하게 되고 항구 방어선으로 숨게 됩니다.

영국 잠수함에 격침당하는 아르헨티나 구축함
영국 잠수함에 격침당하는 아르헨티나 구축함 – Martín Sgut – 영어 위키

아르헨티나는 폭격기로 프랑스에서 제작한 대함 미사일인 엑조세를 사용해서 영국 구축함 1대를 침몰시켰고, 승조원 약 20명이 사망하고 24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칠레 등의 협조로 제공권과 제해권을 장악한 영국군은 전쟁의 승기를 잡기 시작합니다.

영국군은 상륙 작전을 통해 포클랜드 제도의 섬들을 정복해갔습니다. SAS나 구르카# 등과 같은 특수부대 작전으로 아르헨티나는 결국 항복을 하게 됩니다.

전쟁 당시 영국군은 지구 반바퀴를 거쳐왔음에도 보급이 풍족했던 반면, 아르헨티나는 자국 앞바다임에도 보급이 크게 부족했습니다.

결국 아르헨티나는 군사력, 보급력, 외교력 심지어 전쟁의 정당성에서도 밀리며 전쟁에 패배하게 됩니다.

 

포클랜드 전쟁! 아르헨티나와 영국의 운명을 가름

포클랜드 전쟁으로 아르헨티나는 민주 정권이 등장했으며, 영국은 경제난을 극복하게 됩니다.

전쟁의 패배로 아르헨티나는 하이퍼 인플레이션이 더 악화되었고, 군부 정권이 실각하며 현대 민주 정권이 들어서게 됩니다.

영국은 전쟁 승리로 1970년대 외환위기의 후유증을 극복하고, 성장 중심 정책을 펼치는데 유리한 이점을 가지게 됩니다.

포클랜드 전쟁은 아르헨티나 군부 정권이 경제난 극복을 위해 침략 전쟁을 벌이다가 패배로 정권 및 경제가 붕괴된 사건입니다.

아르헨티나는 실제 원주민은 대부분 쫓겨난채 유럽계 침략자들의 후손으로 건설된 국가이므로 포클랜드 영유권에 대한 주장은 정당성이 크게 없습니다.

군사력, 외교력 그리고 보급력이 부족했던 아르헨티나는 전쟁에서 패배하게 됩니다.

포클랜드 전쟁의 결과 아르헨티나는 경제, 군사력에 타격을 입은 대신 민주 정권이 들어섰으며, 영국은 성장 중심의 경제 정책을 장기간 펼칠 명분을 얻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