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의 포퓰리즘은 착취형 경제의 파생물


약탈 경제에서 파생된 아르헨티나 포퓰리즘

아르헨티나의 포퓰리즘 정책은 원주민 약탈로 세워진 경제가 빈곤율에 시달리자 이를 분배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1946년 페론이 대통령으로 취임하여 포퓰리즘 정책을 처음 실시하였습니다.


돈이 많았던 아르헨티나가 포퓰리즘에 빠진 이유는 소수 지주가 자본을 독점했고 대다수 국민은 임시노동자로 궁핍한 생활을 해나갔습니다.

포퓰리즘이 반복되는 이유는 취약한 산업 구조 및 통화 약세로 아르헨티나 국민 빈곤율이 너무 높아 대부분의 정권이 과도한 복지 정책을 고수할 수 밖에 없습니다.

건국 당시부터 법치 제도 위에 시작된 북아메리카 식민지와 달리 남아메리카의 식민지는 착취형으로 시작된 것이 수백 년 후 포퓰리즘과 같은 문제를 만들어냈습니다.

아르헨티나의 포퓰리즘이 발생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원주민을 탄압하여 쌓은 정상적이지 않은 획득물을 복지로 배분하는 데서 발생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침략으로 건설되어 경제 자립도가 떨어진 채로 독립한 아르헨티나는 결국 빈곤율이 누적되어 포퓰리즘과 같은 고비용 저효율 사회 구조를 탄생시켰습니다.

 

아르헨티나 포퓰리즘의 시작 : 페론주의

페론 대통령은 아르헨티나 및 세계에서 거의 최초로 포퓰리즘을 시작했습니다.

농목축업 수출 중심의 아르헨티나 경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적인 보호무역주의로 휘청거리게 됩니다.


이 때 노동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페론이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아르헨티나 페론 대통령
육군 대령 출신 후안 도밍고 페론 대통령

#페론은 병원 4000개, 학교 8000개, 유치원 1000개 건설, 임금 인상, 노동 조합 결성, 건강 보험, 사회 보험 등의 복지 정책으로 빈곤율을 역대 최저로 줄이게 됩니다.

하지만 이를 위해 과도한 보호무역주의로 외채 청산 등으로 외교를 단절하고, 해외 지분 기업의 국유화, 농축산물 기업의 수출 통제권#을 빼앗아서 모든 것을 정부에서 배분하는 형식을 취합니다.

또한 소득의 8%를 보험료로 지급하면, 47세 이후 소득의 82%를 연금으로 지불하는 연금 제도#를 만드는 등 과도한 복지 지출을 하게 됩니다.

배분 논리가 성립하려면, 배분의 원천인 농축산물 수출 수익이 보장되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필요합니다.

문제는 보호무역주의 정책으로 수출 경쟁력을 상실했고, 심지어 미국과 유럽으로부터 파시스트로 몰리며 수출 규제를 받았습니다.

결국 아르헨티나의 핵심 돈줄이었던 농목축 수출 수익은 크게 줄었습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제조업으로 산업 전환을 하려면 부품을 수입해야 하는데 보호무역으로 관세가 높아 역마진이 발생합니다.


이미 복지 정책의 실행으로 정부의 미래 고정 비용은 크게 증가했습니다.

수익이 없는데 높은 복지 수요을 감당하기 위해 통화 발행량을 크게 늘렸고, 결국 페론 정부는 임기 후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지게 됩니다.

페론 정부 시절 빈곤율은 크게 감소했지만, 미래의 현금 창출 수단을 개발하지 않고, 통화 발행과 임금 상승 패턴으로 눈속임을 하며 복지 비용을 미래 세대에 넘기는 구조가 됩니다.

포퓰리즘이 비판받는 이유는 분배의 문제가 아니라, 분배에 쓰일 자금을 미래 세대가 써야할 자원과 하이퍼 인플레이션으로 충당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페론주의식 포퓰리즘은 당시 세대가 잠시 혜택을 누린 후 현재 아르헨티나인들이 고비용 사회 구조에서 살게 된 주요 원인 중의 하나가 됩니다.

 

세계 부국인데 왜 포퓰리즘이 발생했을까?

아르헨티나는 소수 지주가 자본을 독점하여 GDP 상승률과 별개로 국민 빈곤율이 항상 높았습니다.

아르헨티나의 건국 이후에도 원주민 영토를 빼앗고 농목축업 사업을 활성화시켰습니다.

아르헨티나 영토 확장

북미와 달리 남미의 농목축업 사업은 대부분 대규모 자원이 필요하고, 따라서 소수의 지주가 임시노동자를 대량 고용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었습니다.#

또한 1차 세계 대전 전후로 냉동 기술 + 해운업의 발달은 아르헨티나의 농목축업 수출 수입을 크게 늘려줍니다.

하지만 이 막대한 수입은 대부분 초기 소수의 지주들에게 돌아갔고, 대다수의 아르헨티나 국민은 임시노동자로 빈곤율이 높아지는 상황이었습니다.

지주들은 애초에 착취로 수익을 얻은 상황이니 근로자에게 정당한 비용을 지불한다는 배분에 대해서 생각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2차 세계 대전이후 각국이 보호무역주의를 펼치자 아르헨티나의 농목축업 사업의 기간이 흔들리게 되었고, 결국 급격히 상승한 빈곤율은 포퓰리즘 정책을 발생시켰습니다.

소득 배분이 불균형했던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자연스럽게 포퓰리즘 정책을 가진 정권에 표를 던지게 됩니다.

 

포퓰리즘이 반복될 수 밖에 없는 이유

아르헨티나는 취약한 산업 구조와 통화 약세로 국민 빈곤율이 너무 높아 어떤 정권이 들어서던 포퓰리즘 정책에 의존할 확률이 높습니다.


아르헨티나는 보호무역주의로 관세가 높아서 해외의 제품을 수입할 경우 가격이 급등합니다.

경쟁자가 없는 내수의 제조업자들은 가격을 높이고, 품질은 세계 평균보다 떨어지는 상품의 악순환을 만들어냅니다.

통화가치가 약세라 제조업 수출 회사는 제조에 필요한 부품 수입시 역마진이 발생합니다. 또한 아르헨티나는 노동법이 강해서 기업 수익이 감소해도 구조조정을 함부로 할 수 없습니다.

문제는 통화가치가 약세라 내국인이 회사에서 받는 월급의 가치가 너무 낮습니다.

거기다 70년전부터 지속된 높은 복지요금은 무상대학, 무상의료, 보장된 연금, 낮은 공공요금 등으로 높은 재정 지출이 예상됩니다.

그렇다고 공공요금을 올리면, 빈곤율이 현재에도 높은 아르헨티나 국민은 더 힘들어지면서 시위와 폭동이 일어나게 됩니다.

결국 화폐를 계속 찍어내면서 하이퍼 인플레이션의 부작용을 안고도 포퓰리즘 정책을 계속 고수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같은 식민지였던 북미와 남미는 왜 정책 구조가 다른가?

영국은 북아메리카를 상업 제국 건설을 위해 법치 제도위에 식민지로 지배했습니다. 반면 스페인은 정복, 착취를 목적으로 남미에 식민 통치를 했습니다.


#영국은 북미에 아주 작은 마을 단위부터 판사를 임명하고 세금을 직접 걷게 하는 재정 자립형 식민지를 건설합니다.

북미는 토지 배분도 70% 이상을 개인이 소유할 정도로 균등했습니다. 재산권의 보호는 자연스럽게 대중 교육열을 증가시켰습니다.

심지어 영국은 북미 식민지와 유럽을 서로 무역을 시켜 상업을 크게 발달시켰습니다.

반면 스페인은 남미의 식민지가 유럽과 교역을 하는 것을 막았고, 강력한 중앙 집권 정책으로 원주민을 카톨릭으로 강제 개종을 하는 등 탄압했습니다.

이후 세대들은 매관매직이 아니면 고위직을 얻을 수 없게 되었고, 아르헨티나는 19%의 지주가 전체 토지를 장악할 정도로 불균형이 심했습니다.

또한 임시 노동자들은 많이 알면 토지 지주들에게 불리하므로 북미와 달리 대중 공교육이 활성화되지 않았습니다. 현재에도 남미 전역의 교육열이 낮게된 근본 원인이 됩니다.

이 때의 강제 탄압, 보호주의의 문화가 지금도 내려와서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남미 정부의 폐쇄적인 보호주의식 정책이 되었습니다.

같은 식민지었지만, 개인의 이익 최대화 욕구를 살린 북미는 세계 최강대국이 되었지만, 이를 억합했던 남미는 세계적인 빈국이 되어 후손들이 대가를 치르고 있습니다.


 

현대 아르헨티나의 포퓰리즘 누구의 잘못인가?

현대 아르헨티나의 포퓰리즘 후유증은 군사 정권의 외채나 페론 정권의 재정 지출보다도 건국부터 원주민 탄압으로 경제를 유지한 아르헨티나 초기 정책에서 왔습니다.

포퓰리즘은 풍부한 미래 현금흐름이 존재해야 가능한 정책입니다. 그렇다면 아르헨티나 포퓰리즘 정책의 자원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수백 년 전 원주민의 농토를 빼았고 개간한 팜파스 지역의 막대한 지주 수입에서 왔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대부분 막대한 통화 발행으로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화폐 눈속임 그리고 디폴트를 남발하며 갚지 않는 해외 투자자의 채권 투자금에서 왔습니다.

포퓰리즘의 원조인 페론은 2차 세계 대전 직후 자신은 자본주의자도 사회주의자도 아닌 제 3의 길을 걷는 다고 공표했습니다.

하지만 건국부터 원주민 착취로 이룩한 경제 구조에서 새로운 산업 구조가 나오기는 힘들었습니다. 즉 복지에 필요한 돈을 충당할 미래 현금 흐름이 없었습니다.

식민지 시절에도 원주민을 탄압했고, 독립 이후에도 이민자들의 후손은 원주민을 착취하며 농목축업으로 부를 쌓았습니다.

아르헨티나는 착취 경제로 탄생했고, 이를 바꾸지 않은채 배분을 먼저 했으므로 현재 포퓰리즘이라는 대가를 치르고 있습니다.

 

아르헨티나 포퓰리즘은 초기 국가 정책의 문제

아르헨티나의 포퓰리즘 정책은 건국 당시부터 원주민 탄압으로 건설된 착취형 경제 구조가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소득 불균형은 페론주의로 빈곤율은 일시적으로 해결했지만, 미래 수입을 대비하지 않은채로 통화 약세와 미래 고정 비용을 증가시켰습니다.

소수 지주가 농목축업을 독점하던 아르헨티나는 국민 빈곤율이 높아 포퓰리즘 정권이 들어서게 됩니다.

보호무역주의는 관세와 고비용으로 수출업자의 경쟁력을 악화시켰습니다.

통화 가치는 떨어지고, 소득은 낮으며 높은 물가 상승률로 국민의 빈곤율이 너무 높아 포퓰리즘에 표를 던질 수 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엄격한 법률, 교역, 재산권 보호 기반으로 세워진 북아메리카의 식민지와 달리 남미는 보호무역, 착취 중심의 식민 정책을 실행했고, 이는 독립 후 양 대륙간 경제적 차이를 크게 만든 원인이 됩니다.

높은 빈곤율로 인한 강제 포퓰리즘화는 건국 당시부터 원주민 착취로 경제를 일군 초기 경제 정책에 원인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아르헨티나의 포퓰리즘 정책은 착취형 경제로 원주민을 탄압해서 세워진 국가 초기 모델로 빈곤율이 누적되어 발생한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